[이소영의 명화 에세이] 전설의 여인 레이디 고다이바-초콜릿의 심벌이 되다.
이른 아침, 한 여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하얀 말 위에 털썩 앉아있다. 여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가는대로 향한다. 긴 머리로 벗은 몸을 가려보기도 하지만, 부끄러움이 금세 사라지지는 않는다. 주변을 살펴보니 쳐다보는 구경꾼은 아직 없다. 마음이 아주 조금은 놓인다. 벗은 몸으로 말에 올라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그녀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녀의 이름은 레이디 고다이바(lady Godiva/?-1067). 기록상으로 세상에서 가장 처음 나체시위를 한 여인일지도 모른다. 11세기 영국은 바이킹 족의 하나인 데인 족(Danes)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데인족의 국왕인 크누트1세는 덴마크 정복을 위해 많은 돈을 필요로 했고, 각 지역의 백작(영주)들을 시켜 농민들에게 강제적으로 세금을 걷었다. 당시 영국 런던의 서북쪽에 위치한 코번트리Coventry)는 레오프릭 백작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데인 족이었던 레오프릭 백작 역시 소작농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징수했다. 하지만 레오프릭 백작의 아내였던 고다이바는 아름다운 미모와 착한 마음씨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고다이바 부인은 강제적으로 세금을 징수하며 가난해져가는 농민들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고민하던 고다이바 부인은 남편인 레오프릭 백작에게 세금을 낮춰달라는 요청을 한다. 하지만 남편이 이를 쉽게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결국 남편은 부인이 당연히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행동을 지시한다. “당신이 벗은 몸으로 동네 거리를 한 바퀴 돈다면, 내가 세금을 낮춰 걷을 수 있도록 해보겠소!” 십대 중반이었던 고다이바 부인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시민들을 위해 벗은 몸으로 말에 올라탔고, 코번트리 동네를 돌았다. 백작부인이라는 신분과, 독실한 신앙이 있는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녀의 결정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고다이바 부인이 어느 날 몇 시경 벌거벗은 몸으로 마을을 돌지 미리 알아냈고, 그녀가 혹시나 부끄러워할까봐 그 시간동안은 아무도 창문을 열지 않았고, 장사도 시작하지 않았다. 그녀의 뒤로 모든 창문들이 꽁꽁 닫히고, 거리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유는 모두 자신들을 도와주려는 용기에 감동한 시민들의 배려다. 하지만 그 와중에 그녀의 몸을 몰래 훔쳐본 자가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코번트리의 양복 재단사 톰이다. 톰은 호기심을 이기고 못하고 고다이바 부인의 벗은 몸을 보고 말았고, 신의 벌을 받아 바로 장님이 되고 말았다. ‘피핑톰(Peeping Tom/엿보기를 좋아하는 사람, 관음증 환자)’이라는 단어는 거기에서 유래되었다. 설마 했던 일을 부인이 실행한 것에 감동한 남편 레오프릭 백작은 세금을 낮추고, 고다이바 부인과 함께 신앙심을 키우며 자신의 영지를 자비롭게 잘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여기까지가 바로 ‘레이디 고다이바의 전설’이다. 누군가는 그녀의 일화가 사실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과장된 전설이라고도 하지만 고다이바와 레오프릭 백작은 실제 인물이였으며, 당시 시민들 사이에 고다이바 부인의 평판이 좋았던 건 확실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전설이 된 이야기는 사실이냐 아니냐에 예민해지기보다 그 전설 안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더 현명한 법.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나체시위와 희생정신을 대표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위의 그림은 영국의 라파엘전파 화가인 존 콜리어(John Collier/1850-1934)가 벗은 몸으로 말에 탄 고다이바 부인을 그린 것이다. 고다이바 부인을 그린 몇몇 명화들 중 내 눈에는 가장 아름답다. 고다이바 부인을 고개를 숙인 가냘픈 여인으로 표현한 존 콜리어의 그림에 비해 아래 에드윈 랜시어(Edwin Henry Landseer/1802-1873)의 그림 속 고다이바 부인은 강하고, 튼튼하며 자신감 있어 보인다. 또한 미국의 페트릭 머피(Patrick J Murphy)가 그린 고다이바 부인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뭉크의 ‘절규’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음으로써 당시 상황의 놀라움이 재해석되어 위트있게 전달된다. 전설 속 고다이바 부인은 이렇게 화가들의 손에 재탄생 되었다. 실제 고다이바 부인의 이름은 ‘고디푸’(Godgifu 혹은 Godgyfu)로 추측된다. 고디푸란 뜻은 앵글로색슨어로 ‘신의 선물’이라는 뜻이다. 고다이바는 고디푸를 라틴어식으로 발음한 것이 바로 고다이바이다. 영국 코번트리 대성당 앞에는 여전히 마을 중앙에 나체로 말을 타고 있는 고다이바의 조각상이 있다. 그리고 1678년부터 고다이바 부인의 희생을 기념하는 ‘고다이바 행진’은 코번트리 박람회의 정기행사가 되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자신의 신분을 내려놓고, 농민들을 위해 기꺼이 나체의 알몸시위를 했던 레이디 고다이바가 우리에게 가까워진 건 바로 벨기에를 대표하는 브랜드 ‘GODIVA고디바(고다이바)’초콜릿 때문이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머뭇거리다가도 한 번 맛을 보면 종종 사먹게 되는 바로 전설의 그 초콜릿 말이다. 조셉 드랍스가 1926년 설립한 벨기에의 프리미엄 초콜릿 브랜드인 고디바는 레이디 고다이바가 나체로 말 위에 타고 있는 마크를 심벌로 사용한다. 우리는 이렇게 전설 속의 여인을 명화에서 만나고, 그 명화 속 여인을 다시 상품에서 만난다. 전설은 우리에게 의미를 남기고, 명화는 우리에게 그 전설의 이미지화를 보여주며 고마운 안내자가 되어준다. 전설과 명화의 멋진 콤비 덕분에 한 브랜드의 심벌이 탄생한다. 오늘부터 나는 더 샅샅이 심벌이 된 명화, 심벌이 된 전설을 찾아나서 볼 참이다. 레이디 고다이바가 초콜릿의 심벌이 되어 자리 잡은 것처럼 자세히 바라보면 오래전의 전설이, 명화가 되어, 상품의 심벌이 되어 우리 곁에 살아가고 있다. 이소영(소통하는 그림연구소-빅피쉬 대표/bbigsso@naver.com/출근길 명화 한 점, 엄마로 다시 태어나는 시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