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형의 다른 생각] 80년전 예고된 포스코 사태
[송병형의 다른 생각] 80년전 예고된 포스코 사태 검찰의 포스코 수사를 두고 이번에야말로 비리의 뿌리까지 파헤쳐서 후세들에게 교훈다운 교훈을 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문민정부나 국민의정부 시절의 야전병원 수술식 사정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포스코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상징이다. 박정희정부가 굴욕적인 한일협상을 통해 얻어낸 돈으로 탄생, 국가에 무거운 부채를 진 채 출발했다. 포스코가 제철보국(製鐵報國)을 사훈으로 삼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포스코는 산업화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사훈에 걸맞는 국민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래선지 박근혜 대통령이 부친의 자랑거리인 포스코가 이명박정부를 거치며 망가진 데 분노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를 감안하면 검찰의 철저한 사정은 어느 정도 기대해도 될 듯하다. 다만 일각에서는 검찰의 철저한 사정을 넘어 포스코 사태에 대한 역사학적, 정치·사회학적 고찰까지 필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그만큼 포스코의 역사적 의미가 크다는 게 이유다. 10여년전 읽은 한 권의 책이 유독 기억에 남는 걸 보면 포스코 사태의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곱씹어봐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 있는 지적이다. 2000년대 초반 한국어판이 출간된 고바야시 히데오의 '만철(남만주철도주식회사), 일본제국의 싱크탱크'에는 80년전 쇼와제강(지금의 안산제철소)의 흥망사가 잘 그려져 있다.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에서 쇼와제강은 산업화를 주도했다. 만주국이 '철강왕국'으로 불릴 정도였다. 당시 '2키3스케'(도조 히데키, 호시노 나오키, 기시 노부스케, 아이카와 요시스케, 마쓰오카 요스케)로 대표되는 일본의 권력자들은 만주국의 실권을 쥐고 전후 일본의 경제모델이 됐다는 '관료 주도형 계획경제'를 실험했다. 경제가 정치권력에 휘둘린 것은 불문가지다. 이 과정에서 쇼와제강은 큰 시련을 겪었다. 마치 오늘의 포스코를 연상시킨다. 포스코 사태의 뒤에도 '영포 라인'으로 불리는 이명박정부 실세들이 개입했다는 게 정설처럼 통한다. 포스코는 2009년 초 정준양 회장 취임 이후 이명박정부의 자원외교 드라이브에 발 맞춘 문어발식 확장으로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져 내렸다. 쇼와제강도 당시 신흥재벌로 떠오른 '닛산 콘체른'에 인수된 뒤 포스코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닛산 콘체른이 만주로 진출한 계기 역시 만주국의 '만주개발 5개년계획'이었다. 닛산 콘체른의 아이카와 요시스케는 1937년 본사를 만주국의 수도인 신징(지금의 창춘)으로 옮겨 만업(만주중공업)을 세우고, 만철로부터 쇼와제강 등을 인수했다. 동시에 문어발식 확장에 나섰다. 만주광산, 만주비행기, 만주자동차, 만주특수강, 만주마그네슘, 둥비엔따오개발 등 제조업 관련 업체는 물론이고 자금확보를 위해 만주투자증권까지 설립했다. 만주개발에 필요한 모든 부문의 기업을 갖추고 유기적 경영을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만업은 결국 유기적 경영에 실패했다. 원자재 수급 곤란, 숙련공 부족 등 제반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평양 전쟁이 격화되는 상황변화와 맞물리면서 경영은 더욱 악화됐다. 패전이 아니더라도 문을 닫을 상황이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정치권력에 휘둘린 포스코의 현 상황은 이미 80년전 예고됐던 셈이다. 한국에서 또 다른 역사의 반복은 막아야 한다. 포스코 사태에 대한 철저한 해부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