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국의 경제이야기] '45년' 기업사를 되짚어 보며
북한만 빼놓고 세계 어디를 가나 현대차와 삼성의 휴대폰,LG 가전제품 광고를 볼 수 있다. 사실 2002년 월드컵이 열릴 때만 해도 현대차와 삼성 LG는 세계 1위와는 거리가 있는 그냥 그런 회사였다. 불과 10년도 안된 사이 현대·삼성·LG그룹은 세계 유수의 회사가 됐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400만명이 죽고 산업시설은 아무것도 없는 나라였다. 1954년 일본을 누르고 스위스월드컵에 가게 됐지만 타고 갈 비행기가 없었다. 대표팀은 군용기로 무작정 일본에 갔다. 영국인부부의 도움으로 태국까지 가게 됐고 다시 이탈리아로 가서 유니폼을 구하고 손바느질로 태극기를 달았다. 경기 시작 하루전날 밤 스위스에 도착을 했다고 한다. 헝가리에 9:0으로 졌다. 60년 넘게 깨지지 않는 월드컵 최다 골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였다. 월드컵 스코어처럼 징그럽게 못사는 나라 국민이었다.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했을때 1인당 소득은 82 달러로 아프리카 가나의 179 달러의 절반도 안됐다. 1968년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을 만들기 시작했다. 1970년 정주영 고 현대그룹 회장은 기계산업이 없던 시절 포니라는 독자모델자동차를 만들고 조선소를 지었다. 1974년 설탕과 옷감을 만들던 삼성이 전자산업을 시작했다. 삼성은 1977년 이전까지 컬러TV도 못 만들었다. 1983년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독자적인 메모리칩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다. 40년 만에 세계적 자동차, 휴대폰, 조선업, 반도체, 가전을 만드는 나라가 됐다. 그뿐만 아니라 작은 화약공장(한화), 교복을 만들어 팔던 회사(SK), 하이타이와 라디오를 팔던 LG는 정밀화학, 반도체, 가전, 밧데리 등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이다. 2014년 1인당 국민 소득은 2만6000 달러에 GDP(국내총생산)로 보면 세계 11위의 국가다.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서 짧은 시간에 엄청난 일을 해냈다. 정부의 중화학공업 지원정책도 있었다지만 정주영, 이병철, 구인회 같은 젊고 도전적인 기업인과 일밖에 몰랐던 부모님 세대가 있어 기적이 가능했다. 1970년대 중반 내 고향 경기도 안성의 신작로 길에 승용차는 손에 꼽을 정도로 다녔다. 간간이 지나가는 트럭이 전부였다. 77년도 아버지가 쌀 10가마니를 팔아 TV를 샀다. 저녁마다 우리집 마당은 동네 분들이 연속극과 레슬링경기를 보기 위해 가득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78년 부모님은 저축한 돈으로 읍내에 새집을 지었다. 이사첫날 화장실에 갔더니 욕조와 이상하게 생긴 물통(수세식 변기)을 처음 봤다. 호기심에 거기에 세수를 하고 말았다. 부모님께 "저렇게 불편한 세면대를 뭐하러 샀느냐"고 했더니 집안 어른들이 다들 배를 잡고 웃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화 "국제시장" 처럼 우리 아버지 세대는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는 상황을 이보다 더 훌륭한 반전이 있을까? 로 만들었다. 그것도 지금 돌이켜 보면 현기증이 날정도로 빠르게 우리모습도 변했다. 비록 20년의 짧은 회사생활을 했지만 기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대부분 제조업이 중심인 10대 그룹시리즈를 쓰게 됐다. 글을 쓰면서 칭찬보다는 비난을 많이 받은 느낌이 든다. 얼마 전 쓴 모 재벌 회장 칼럼을 SNS에 올렸더니 " 사람이 미래 맞냐?, 협력사 피를 빠는 회장 얘기 쓰니 좋으냐", "얼마 받고 쓴거냐"는 비아냥의 댓글을 받았다. 나는 댓글을 쓴 분들의 생각을 존중한다. 기업의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아픔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는 특정기업이 좋을리가 없을 것이다. 빠른 경제성장과 그로인한 부조리와 불평등이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 창업세대는 물러나고 그 뒤를 2세 3세경영인이 맡고 있다. 정몽구, 이재용, 구본무, 최태원, 김승연, 허창수, 박용만, 이준용, 신동빈 회장이 그들이다. 모두 휴대폰, 조선, 자동차,TV, 반도체, 정밀화학 같은 기간산업에 뿌리를 두고 있고 70년대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회사들이다. 헬(hell·지옥)조선, 갑질, 금수저, 흙수저가 우리사회에 유행어가 됐다. 참 씁쓸한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독일,일본처럼 제조업이 잘돼야 나라와 국민의 삶이 풍요롭게 된다. 제조업의 대표주자인 10대기업을 책임지고 있는 2,3세 경영인이 힘을내어 사업을 키워 줬으면 하는 바람과 책임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연이어 썼고 이제 마감하고자 한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