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인문학산책] 먼저 인간이 되지 않고서는
"인문학 공부가 정말 절실하더라구요. 먼저 인간이 되지 않고 뭘 하겠어요." 평생교육의 현장에서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다. 탐욕스러운 정치인, 야비한 검사, 노동자들을 짓밟는 경영자 등은 모두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전문가들이다. 이들의 전문지식과 능력은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집중되어 있다. 이런 전문가들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고통이 확산되고 병이 깊어간다. 세계적인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에서 인문학이 결코 빼놓으면 안 되는 교육항목으로 "노동의 역사"를 꼽고 있다. 인문학과 노동의 역사가 웬 관계냐고 고개를 갸우뚱 할 수 있다. 인문학이 인간에 대한 이해와 그 존엄을 지켜내는 성찰이라고 한다면, 노동을 통해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온 존재의 가치를 깨우치는 것은 핵심적인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의 권리는 불온시 된다. 마사 누스바움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멸시하는 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는다.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의 원제목은 『이익을 앞세우지 말라(Not for Profit)』이라는 걸 떠올리면, 그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파악된다. 세월호 참사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것 가운데 중심에는, 사람보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모신 사회의 비극이라는 점이다. 자본의 탐욕과 지배가 인간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고 희생시키는 논리와 현실의 끝에는 죽음이 자리 잡고 있음을 우리는 이번에 더더욱 절감하고 있다. 돈으로 환산되는 이익이 모든 가치와 판단의 본질이 되어버리는 순간, 어떤 처참한 사태가 벌어지는지 이제 더는 달리 이론(異論)을 제기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고통을 겪고 있는 이유 대부분은 인간의 생명과 권리에 대한 멸시와 노동의 착취, 무한경쟁으로 몰아가는 생산력 주의와 불평등에서 기인한다. 너무도 많은 희생을 치룬 뒤에 다시 절감하게 되는 진실이지만,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나지 않았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능력은 인간사회의 행복을 위한 첫 조건이다. 더는 누구도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절실한 마음이 그로써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구상에서 인간으로 등장한 지 무려 250만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 인간으로 진화하는 일이 멀고도 멀었나 보다.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