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곰신'은 담담해
친한 후배의 남자친구가 얼마 전 군대를 전역했다. 후배의 남자친구가 훈련소에 들어갈 때 '어머니와 여자친구'가 함께 배웅하는 웃기지만 슬픈 그 전형적인 상황이나 입대 후 애틋한 첫 편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것이 꽤 오래 전 일이었던 것 같은데 벌써 제대라니 놀랍다. 솔직히 말해 도중에 깨질 줄 알았다. 나는 어디까지나 그 후배와 친하지 그 남자친구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게다가 남자는 학생, 여자는 사회인, 하물며 여자가 한참 연상인 커플이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고무신을 거꾸로 신으라고 대놓고 말하진 못하지만 소심하게 '무리하지마'라고 은근슬쩍 속삭였던 것도 같다. 사랑을 초지일관 지켜낸다며 이 악물고 다른 가능성까지 차단한다는 것도 안쓰러웠고, 그녀는 충분히 다른 이성들에게 매력적이어서 '언니'로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성실히 기다려냈다. 대단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냐고 물었더니 의외로 담담하다. "내 나이가 많아서 차라리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세상에는 주변에서 말리는 '연애'들이 참 많다. 종교로 갈등하는 연애, 차이 나는 학벌의 연애, 가난한 상대와의 연애, 그 중에서도 '군인과의 연애'는 어차피 시간이 자연스레 '해결'해준다는 면죄부마저 곁들여진다. 인생 선배들은 자기 체험담을 바탕으로 조언, 충고 혹은 오지랖을 떤다. 하지만 '나이 많은' 그녀는 그런 이야기들이 '그들의 한계를 반영한 이야기'임을 알만큼 성숙했던 것이다. 아니라면 그 사람들이 경험했던 한계가 내게 두려움을 주는 것인지, 내가 오히려 그들의 한계를 빌려 내 두려움의 변명거리로 삼고 있는지 구분조차 못했을 것이다. 불확실함이 주는 두려움은 크다. 하지만 미리 후회할 것을 두려워하며 내리는 섣부른 선택이 아니라 돌아보면 후회하더라도 그 순간순간의 '나의' 마음을 따라 시간이 흘러 오늘까지 이르게 된 것이리라. 군대를 아직 안 간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혹은 사랑하게 될 여자들은 수두룩하다. 어차피 잘 안 될 일을 뭣하러 하니,라고 그들에게 말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을까. /칼럼니스트